영화로 읽는 감정 에세이
《고흐, 영원의 문》을 보고 — 예술이란, 꺼내는 사람의 이야기
moosona
2025. 6. 13. 13:19
▩ 고흐의 눈, 나의 시선
영화 《고흐, 영원의 문》을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고흐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순간순간 그렇게 세상을 ‘본다’.
햇살이 지나가는 창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빛에 물든 오후의 색깔. 우리는 분명 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은 스쳐 지나가거나, 표현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놓쳐버린다.
고흐는 달랐다. 그는 '표현한' 것이 아니라, '꺼내려' 했다.
자연 속에서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을, 인간의 언어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감각을, 그는 물감과 붓으로 꺼내려 했다. 그 간절함은 때로 광기로 비쳤고, 결국 이해받지 못한 그 마음은 그의 정신까지 갉아먹고 말았다.
그의 거칠고 물든 손이 떠오른다.
그 손은 단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을 만지고, 꺼내고, 옮기고, 살려냈다.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그는 그저 살아내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 고갱과 고흐, 그리고 예술의 방향
나는 고갱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두 사람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를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고갱은 ‘기억을 통해 재구성된 자연’을 그리려 했다.
반면 고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렸다. 그는 왜곡하지 않았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안의 숨결을 캔버스로 옮기려 했다.
그 지점에서 나는 고흐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그의 그림은 너무도 다양하다.
서민들의 가난한 삶을 담은 그림부터, 들판과 하늘, 밀밭, 나무, 해바라기까지. 고흐의 시선은낮은 곳에 머물러 있었고, 그 겸손한 시선이 그의 예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 꺼내는 사람
우리는 순간을 본다.
하지만 그걸 꺼내는 사람은 드물다.
고흐는 본 것을 꺼내려 한 사람이다.
그게 예술이든, 삶이든,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그걸 표현하려는 용기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
그리고 그 간극을 온몸으로 건너려 했던 고흐에게,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편평한 풍경을 마주하면 내겐 영원만이 보인다.
나에게만 보이는 걸까? 분명 존재엔 이유가 있을 텐데.
-빈센트 반 고흐-